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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좋은 것

源氏物語千年紀 Genji

- 기본정보 -

애니이션명 : 源氏物語千年紀 Genji

방영기간 : 2009

방영총화수: 11화 TVA

제작사 : 테츠카 프로덕션

제작사 홈페이지 : http://genji-anime.com/


2009년에 본 애니 중에서 최고를 고르라고 한다면 이 작품을 꼽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면 좀 의아해 하실 분들도 계실껍니다.

왜 하필?

이제 슬슬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보도록 하죠.


1장. D모냥과 겐지모노가따리

겐지모노가따리를 처음 접한 건 대학 신입생 때였습니다.

뭐가 그리 신났는지 낮에는 도서관, 밤에는 술집을 전전하던 시절인데

서양에 돈 후안이나 카사노바가 있다면 동양에는 히카루 겐지!

그 말에 이끌려 뭔가 ㅎㅇㅎㅇ하는 것들이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꾹참고 중반까지 본 것이 첫 만남이지요.

그런데 D.H. 로렌스 소설을 기대하고 온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

언제 야한 장면이 나오나 두고보자고 중반까지 읽은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죠.

그냥 덮고서 헤이케 모노가따리를 읽었습니다.

첫 만남은 이롷게 실패.

한 10여년이 흘렀을 때 전공에 너무 질려서 

인근 시대의 자료들에 눈을 돌리는데

그때 겐지모노가따리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귀족사회의 메카니즘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랄까.

슬슬 D.H. 로렌스의 소설에서 ㅎㅇㅎㅇ한 부분이 아닌 

행간의 사정이 눈에 들어올 때쯤,

이 책이 정말 재미가 있어지더군요.

그렇게 D모냥은 겐지의 포로가 되어버렸습니다.


2장. 데자키 오사무, 그의 판단은 옳았다.

이 작품은 후지TV의 노이타미나 레이블로 방영되었습니다.

좀 실험적인 작품이거나 애니와 거리가 멀었던 여성층을 공략하는 심야애니가

겐지모노가따리 전체를 다룬다는 것은 무리겠지요.

소설가 가이온지 쵸고로의 말처럼 

'예전엔 중학생도 읽던 고문을 대학생도 못읽는다'는 시대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겐지가 유배를 가기 전까지만 다루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만약 에어리어 88이 원작 전체를 다 다루었다면 범작이 되어버렸겠죠.

아스란이 멸망하고 모든 이들이 마치 죽음을 맞는듯한 여운으로 마친 것이

전설로 남게 한 근본이라 생각합니다)

원래는 야마토 와키의 '아사키 유메미시'를 저본으로 삼으려고 했으나

(이 만화는 국내에 정발되었습니다. 감히 추천하는 바입니다)

데자키가 뒤틀어버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펴겠다고 했을 때,

또 초반에 여인 한 명씩 다룬 거 보고 

'데자키, 너님 미쳤군요'라 솔직히 욕을 했습니다.

그런데, 뒤로 갈 수록, 종영되고 다시 돌려보는 횟수가 늘 수록

그냥 순서대로 쭈욱 나가는 거보다

이것이 더 겐지를 드러내는데 효과적이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초안대로 였다면 11화에 다 담아내지도 못하고

원작에 질질 끌려다니다 외면받는 작품이 되어버렸을 껍니다.

이젠 '데자키, 너님은 정말 천재임!'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세웁니다.


3장, 뻔한 이야기를 몰입하게 하는 것은 기교

사실 너무나도(일본에서는) 알려진 이야기라

보통의 방법으로는 임팩트가 없습니다.

일부러 한 편당 한 명을 다루는 것도 좋은 시도이지만

(그래서 오보로즈키요가 중반으로 왔지요)

극적효과를 부여한 건 감정이 고조될 때의 연출이지요.

마치 15프레임의 애니를 보는 것 같이 

끊어지듯 스쳐지나가는 모습이라던지

여러번 겹치듯 보여지는 인물이라던지

어쩌면 한물간 기법같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전하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또는

'네 이년, 참으로 고약한 것이로구나'로 진부해질 수 있는 역사물을

좀 색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고 봅니다.

특히 후지쯔보와 관련해서 두 번의 환상(특히 11화의 전반)은

이 작품이 그저 흔한 바람둥이 편력이 아니란 것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눈보라 속을 헤메는 겐지의 독백이 결국 무엇을 말하려는가는

11화 맨 마지막 바닷가에서 드러나지요.

11화라는 분량에서 겐지모노가따리를 다 담으려는 노력 대신

겐지의 사랑에 대해 집약적으로 다룬 것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4장, 겐지와 그의 여인들

겐지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지요.

천황의 성은을 입어 버리자 주위의 질투가 극심해진 나머지

그로 인해 병을 얻어 죽게 된 것이지요.

겐지의 그 현란한 '헤이안 드리블'도 모성의 결핍에 기인한 것이고

그가 일개 신하의 신분으로 떨어진 것도

(뭐, 이건 차아천황때부터 이어진 황족 정리의 일환이지만)

천황이 되면 나라가 어지러워 진다는 고려사신의 관상에 의한 것이지요.

사랑과 지위, 

뭔가가 결핍되었다는 것이 누나와도 같은 후지쯔보에 대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로 나타나고,

또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다른 여인에게서 채우려는 것이지요.

그것이 때로는 많은 비극을 양산해내기도 합니다.

어쩌면 1화 처음에 나오는 대사처럼

그런 사랑을 얻지 못한 것이 불행한가

아니면 만나기라도 하니 행복한가란 질문도 나오게 되지요.

나름 로쿠죠노 미야스도코로의 질투도 이해 되기도 하는데

후지쯔보나 무라시키노 우에(후반기의 진히로인이기도 합니다)

그 이상으로 공감이 갔던 것이 겐지의 첫부인 아오이노 우에였어요.

뭔가 어긋난 그들의 첫 만남이 어느 순간에 깨지고

더 나아가 드디어 사랑의 행복을 찾은 순간에 비극을 맞이하는 것이

이 애니를 보며 묘하게 아오이노 우에에게 공감이 되었달까.

(이 일본 최초의 츤데레를 츤데레라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이 작품에선 오보로즈키요를 제외하고는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모 늑대님의 갸녀린 목소리는 어느 고자 행상인도 격침시킨 그 목소리죠)


5. 노래 

아직도 Puffy가 부른 "화창한 날의 노래"는 적응이 안됩니다.

나름 의미있게 고른 것 같지만(그렇다고 믿고 싶어!!!!)

뭐랄까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하나라고 골치가 아파요.

반면 엔딩으로 나온 아타리 쿄스케의 '사랑'은 정말 좋은 노래여요.

처음 듣는 사람에겐 뭔가 생뚱맞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 노래는 누구에게 갖다 붙여도 그의 노래 같달까요?

겐지나 후지쯔보나 아오이, 무라사키, 유우가오, 로쿠조

어느 누구의 시선에서 이 노래를 들어도 다 자기 같은 노랩니다.

이 노래도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에 하나가 되어버렸어요.

덧붙여 후지쯔보와의 만남마다 나오는 朝明도 좋은 곡입니다.


6. 총평

수년 만에 단일 에피소드 말고 전체 작품에 이 평가를 내리는 건 처음입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너무너무' 좋은 것이다!


주) 애니 평가기준은 건담 명대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좋은 것이다 (지온군 대령 마쿠베 대사 / Fantastic!)
모에 아가레 모에 아가레~ (건담 오프닝 / Good)
아무로 나갑니다~! (연방군 소위 아무로 출격시 / 감 좋아요)
자쿠와는 달라! (지온군 대위 란바 랄 / 그래봤자 그프..)
난 살거다 살아서 아이나와 결혼할 거다 (08소대장 / 쌩뚱맞죠?!)
그대는 시대의 눈물을 본다 (Z건담 차회예고 / 보다가 울고 싶은 애니가 있을 때) 
그대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건담 차회 예고 / 살려주셈!! 엉!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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