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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옛날 글

#005-스카이크롤러

다즈냥은 오시이 마모루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그의 작품들을 꼬박꼬박 챙겨보게 되는군요.
공각기동대나 인랑이나 아발론이라던가
패트레이버 극장판 시리즈라던가..
(수도경시리즈의 실사판은 못봤네요)
이번에는 그의 작품이란 것 조차 모르고
뭔가 하고 구경하려니 그의 이름이 보이더군요.
피철퍽하는 첫장면부터 재미있게 봤습니다.

먼저 이 작품을 보시게 된다면 두 번은 보시기를 권합니다.
한 번은 멍하니 보고 다시 봐야
그 장면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표정이나 행동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거군요.
특히 주인공 칸나미 유이치를 둘러싼 
주변 인물이 주는 복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요.
특히나 오시이 마모루의 집착이랄까 주제랄까
현실과 가공의 만남이란 걸 생각하면 좀 더 이해하기 편해집니다.
(아발론에서 현실 세계는 항상 음습하지만
옛 동료를 말살하기 위해 들어간 가상세계는 화사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누군가 스카이크롤러란 제목치고 공중전 장면이 너무 적었다고 하던데
전쟁영화라고 첨부터 끝까지 전투장면만 나오지 않죠.
오히려 땅에서 뒹구는 유이치와 그의 동료들이야 말로
하늘에서 항상 허우적 대야하는 존재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두 번째 보면서 이 작품의 제목을 칸나미 유이치의 슬픔이라고 바꿔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역시 ~~의 슬픔 정도는 되어야 어른이 되지 못한 
청춘들의 아픔이 제대로 담겨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과연 칸나미는 슬펐을까요?
마지막에 내던진 대사, 그 앞에 쿠사나기에게 남긴 말에서
슬픔이나 고독이나 자기 파괴의 기미는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그저 '선생'에게 시험을 받고 싶었을 뿐이여요.
그렇다면 슬픈 것은
쿠사나기, 사사쿠라, 후코(불가사리랑은 관계 없습니다), 유리겠지요.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떠나보내고 맞이하고 그것을 반복해야 하는 사람들의 슬픔이겠지요.

마지막에 히이라기 이사무를 맞이하는 쿠사나기는 첫 장면과 다르게 웃고 있습니다.
이런 결말의 작품에는 흔히 사랑으로 강해진 사람의 표정이겠지만
이 작품에서는 모르겠습니다,
칸나미의 말이 그녀를 바꾼 것인지, 체념을 한 것인지..
(물론 전자라고 보긴 하지만 글쎄요..)
그나저나 아발론 이후(아님 이전부터 그랬는지)
유럽, 특히나 동유럽 무척 좋아하는 군요.

감상 포인트 
1. 유이치가 락커 M모씨를 닯았다고 해서 키득키득 웃지 말자.
2. 오시이 작품에 나오는 항상 나오는 멍멍이, 드뎌 조연자리를 얻다.
3. 쿠사나기나 사사쿠라가 이노센트에서 본듯하다고 두리번 거리지 말자.
4. 유이치의 여자친구라고 항상 우그으~라 하지 않는다.(-_-;;;)
5. 개인적으로 가장 맘에 든 건 토키노와 쿠스미,
    토키노는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유형, 쿠스미는 웃으며 손 흔드는 것이 예뻐서.

- 09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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